안녕하세요 고3 여학생입니다.저번주에 수시 원서를 다 썼고 지금은 수능 최저랑 면접만 준비하면 되는 상황이에요. 평소에 대학 욕심이 크게 없었던지라 지금 성적과 수시 라인에 큰 불만은 없어요.근데 막바지에 와서 자꾸만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집니다..사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수행평가랑 세특 활동 등에 지쳐서 크게 한 번 우울증이 왔었어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때 제대로 된 정신과 진료를 못 받았던게 원인인지 그 후로도 크고 작게 몇 번 우울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근데 한동안 괜찮았다가 수능 두 달 남긴 시점에서 다시 우울감이 찾아옵니다..처음에는 그냥 조금 지친거구나 싶어서 가끔 혼자 영화도 보러 가고 소소한 일탈?로 스트레스를 풀어보려고 했는데, 지금은 하루 정도 쉬어보려고 해도 어차피 내일이면 다시 공부하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생각에 쉬어도 기쁘지가 않아요..아무래도 학교 학원 스터디카페 집만 반복되는 일상에 회의감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냥 다 지긋지긋해요저도 이게 문제인 걸 알아서 엄마한테 얘기도 해봤는데 엄마는 조금만 버티면 된다면서 힘내라고만 해줍니다. 솔직히 그냥 버티라는 말에 화가났어요.저희 어머니는 자상하시긴 한데 꽤 보수적인 분이셔서 우울증이나 정신과에 굉장히 회의적이십니다. 제가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했을 때도 화부터 내셨어요(물론 나중에 화해하긴 함). 그런 점이 쌓이고 쌓여서 엄마 말에 더 화가 났던 것 같아요.근데 막상 반박해보려고 하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엄마 말이 맞는 것 같아서, 내가 엄마였어도 그런 말 밖에 해주지 못할 것 같아서 결국 대화를 포기했습니다..제 머리로도 두 달만 남은거 열심히 해야겠다고 이해하고는 있는데 막상 따라주지 않는 몸 때문에 스스로가 너무 미워져요. 정말로 제 의지 문제인 것 같고, 제가 나약해서 엄살을 부리는 것 같다고 느껴져요.결국 지금은 병결이나 체험학습 등으로 학교를 자주 빠지고 있는 상태입니다.학교에서 집중이 안 된다고 말하자 엄마가 흔쾌히 학교를 빠지고 스카에서 공부하는 걸 허락해줬어요. 근데 막상 학교를 빠지고 스카에 가도 집중이 안 돼서 괴롭습니다..요즘엔 집중력이 너무 떨어져서 핸드폰만 보다가 나온 적도 많아요.(사실 지금도 스카에 앉아있다가 공부가 손에 안 잡혀서 이거 쓰고 있어요)그럴 때마다 더 화가 나고 스스로가 미워집니다...엄마는 절 위해 최선을 다해 지원해주고 계신데 그런 노력을 제가 다 부질없게 만들고 있다는 걸 느낄 때마다 도망가고 싶어져요.저도 이 우울한 시기가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겠고, 솔직히 말하면 집에 돌아와서 혼자 게임할 때는 우울감이 거의 없어서 이걸로 정신과에 가봐도 될지 망설여져요. 그리고 집중이 안 되는 날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끔 집중이 잘 돼서 공부가 잘 되는 날도 있어요. 근데 요즘엔 그 주기가 빨라져서 집중이 안 되는 날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지금 자면 또 다시 내일이 온다는 생각에 잠자는 시간도 점점 늦어져서 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정신과에 한 번 가보는게 맞을까요?
안녕하세요, 질문자님. 수능이 두 달 남은 이 중요한 시기에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니 정말 안타깝고 마음이 많이 아파요. 고3이라는 시기 자체가 얼마나 큰 부담이고 스트레스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지금 느끼시는 무기력감과 우울감은 너무나 당연하고 힘든 감정일 것 같아요.
지금 질문자님이 느끼시는 감정들은 '번아웃(Burnout)'이라고 볼 수 있어요. 고1 때부터 이어진 학업 스트레스, 수행평가와 세특 활동 등에 지쳐 한 차례 우울감을 겪으셨는데, 다시 한번 이런 감정들이 찾아온 건 몸과 마음이 "이제 정말 지쳤다, 쉬고 싶다"고 보내는 신호일 거예요. 열심히 달려온 만큼 에너지가 고갈된 거죠.
어머니의 마음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지만, 질문자님의 입장에서 "조금만 더 버티라"는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고 오히려 화가 나셨다는 부분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느끼셨던 실망감과 좌절감은 결코 가볍지 않은 거예요. 마치 '내 힘듦은 이해받지 못하는구나'라고 느끼셨을 수도 있고요. 어머님이 최선을 다해 지원해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동시에,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까지 더해져 더 괴로우실 것 같아요.
하지만 질문자님은 결코 나약해서 엄살을 부리는 게 아니에요. 이런 상황에서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마음의 에너지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증거예요.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고, 학교를 빠지고, 스터디카페에 가서도 휴대폰만 보고 나오는 건 질문자님의 나약함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는 방식인 거죠. 스스로를 미워하지 마세요. 질문자님은 충분히 잘해왔고, 지금은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봐야 할 때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뿐입니다.
정신과에 한 번 가보는 게 맞을까요? 네, 저는 꼭 가보시길 강력하게 권해드리고 싶어요.
게임할 때 우울감이 없어서 망설여진다고요? 오히려 특정 활동에서만 기분이 좋아지고 평소에는 무기력하고 우울하다면, 이는 지금 겪고 있는 우울감이나 다른 어려움을 잠깐 잊게 해주는 '회피 행동'이나 '일시적인 보상 심리'일 가능성이 커요. 게임을 할 때만 기분이 좋다고 해서 현재 겪는 어려움이 가볍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에요.
고1 때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했던 우울감이 다시 나타난 것일 수도 있어요. 감기는 초기에 약을 먹으면 낫지만, 방치하면 더 큰 병으로 키울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의 감기도 전문적인 돌봄이 필요합니다.
집중력 저하, 수면 패턴 불규칙, 무기력감, 우울감은 모두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신호들입니다.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질문자님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어떻게 이 시기를 현명하게 극복해나갈지 함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필요한 경우 적절한 약물이나 상담 치료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정신과 진료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다리가 부러지면 정형외과에 가고, 배가 아프면 내과에 가듯이, 마음이 아프면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자신을 위해 용기를 내는, 아주 멋진 결정이 될 거예요.
지금 질문자님은 그 어떤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왔고, 지칠 만큼 고생하셨습니다. 이제는 잠깐 멈춰 서서 스스로의 마음을 돌볼 시간이 필요해요. 혼자 힘들어하지 마시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이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시길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소중하니까요.